김병철 목사
경북·울산 지방경찰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단법인 경찰선교회 대표로 15만 대한민국 경찰 복음화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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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66년 예루살렘에서 시카리(Sicarii)혹은 열심당(Zealots)으로 불리는 유대인 저항집단을 중심으로 로마군의 유대 영토점령과 폭정에 반발하는 무력투쟁이 발생 하였다. 로마군은 유대인의 보복을 근절하기 위하여 유대교인들을 잔인하게 진압하 였다. A.D70년에는 로마의 티투스(Titus)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예루살 렘 성전이 철저히 파괴되었다. 수백만의 난민이 발생하자 열심당원들은 가족과 함 께 예루살렘 남쪽 100여 ㎞ 떨어진 마사다(Masada)요새로 피난하여 그곳을 저항의 근거지로 삼았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위치한 마사다(Masada)는 난공불락의 지형으 로 로마군이 2년 넘게 포위 공격을 시도했지만 점령하지 못했다.
A.D73년 4월 16일 새벽, 로마의 플라비우스 실바(Flavius Silya) 장군은 10군단 일만 오천 명의 병력 으로 이스라엘 저항군 일천여 명이 3년간 버티고 있는 마지막 요새“마사다(Masada)”를 공략하기 전 회 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3년간 로마군을 괴롭혀온 마지막 항전의 요새를 침공하여 대 살륙전을 감행함 으로서 유대인의 항전의지를 본보기로 도려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막상 입성하고 보니 요새는 고 요함 속에 불타고 있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유대인 지도자 엘리에제르 벤 아이르(Eliezer Ven Yair)를 포 함한 969명의 시체뿐이었고 살아있는 사람은 5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숨어 있었던 두 명의 여인뿐이었다.
로마군이 최후의 공격에 나서려던 때 저항군과 가족들은 로마군의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 겠다며 모두 집단 자결을 선택하고 만다. 항복하기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극적인 종말을 역사가 요 세프스는“유대 전쟁사”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적으로부터 얻어 내려했던 승리의 기쁨은 사라지 고 모든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깃든 기품과 미덕을 기렸으며, 거룩한 명분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은 그들의 행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다윗이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한 뒤로 천년 동안 이 어진 이스라엘 왕국이 사라지고, 이후 이천 년 동안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게 되는 디아스포라(Diaspora) 의 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을 비감하게 장식한 사건이다.
마사다(Masada) 항전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자긍심이자 저항정신의 상징이다. 지금도 이스라엘 학생 들의 수학여행과 훈련을 마친 군인들의 임관식이 행하여지는 필수 코스이다. 학생과 군인들은 기온이 40 도가 넘고, 그늘 한 점 없는 이 비탈길(snake path)을 3시간 동안 걸어 올라가며“마사다(Masada)는 두 번 다시 무너지지 않는다”고 다짐한단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인의 항전의식과 국민정신이 20억 아랍민 족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나라 이스라엘이 생존 할 수 있는 비결이다.
지난 8월 15일 세계최강의 미군이 베트남 전쟁에 이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철수하여 수도 카불을 탈레반이 장악했다. 국가를 수호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부패한 정부가 전쟁 시늉만 하다 미군이 철군하 자마자 항복하였고, 대통령은 가족과 함께 현금 2,000억 원을 들고 국외로 도주하였다. 카불시내는 탈레 반의 총소리가 요란하고 공항은 월남 패망 이후의 보트피플을 연상케 하는 난민들로 아비규환이다. 지도 자가 무능 부패하며 국민이 항전의식이 없으면 국가는 외세에 의해 패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월남과 아프가니스탄을 보며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최고지도자가 6.25 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김원봉을 존경하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미 군철수를 기대하며, 북한의 김여정이 한마디 한다고 하여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고, 종북 주사파들이 전 교조와 민노총을 장악하여 국민을 겁박하고 있다. 평화협정과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이들이여! 아프가니스 탄 사태를 똑바로 직시하라. 우리에게 소중한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Freedom is not f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