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애 집사

제주경찰서 서귀포경찰서 청문감사인권관으로 섬기고 있다. 경찰합창단인 폴리엘합창단원으로 섬기기도 했으며 일터선교에 헌신과 사명감으로 살아가는 행복한 전도자이다.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직장 생활하며 다 잘 챙길 수는 없었 지만 그래도 항상 되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내게 든 남에 게든 화내지 않고 살아가기가 내 삶의 원칙이었다. 하지만 수 요일 점심시간을 비워 예배를 보러 가는 나에게 선배가 농담 처럼 던진다는 말에 적지 않게 마음이 상했다. 그래도 돌아서면 잊게 해달라고 기도 했다. 지금도 수요예배를 떠올리며 이 글을 쓰는 것은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이런 상처를 받았거나 앞으로 이런 상처를 받는다면 절대 마음에 두지 말기를 바라 는 생각에서 글을 쓴다.

  “재는 아비가 둘이래”점심시간에 동료들과 같이 식사를 하지 않고 수요예배를 보 러 간다고 선배가 그렇게 말한다며 누군가가 나에게 전해 준 신박한 표현이었다.‘ 낳아 준 아버지가 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있는 사람’,‘아비가 둘’이라고 재미 로 농담으로 던진다는 말에 상처를 받았지만 아무 내색도 불쾌해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께서 들었으면 몹시‘야속하다’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 선배 가 그런 말을 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새벽마다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그 선배와 공 유할 수 있는 점은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없었던 적이 없 었지만‘다 해결된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실 것이다.’라는 믿음 속에서 열 살도 더 많은 그 선배와 공유점을 찾으려고 기도하고 또 응답받기를 기다렸다.

 그날도 불이 꺼진 교회 한편에서 새벽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낡은 영사기가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을 비추듯이 빛이 쏟아지더니 하나님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그 사람을 사랑하니?’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피하고 외면하려고 했고 진 정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던 사람이 나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순종하기로 했 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떻게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하고 ‘사랑합니다’를 입술로만 되뇌지 말고 전해야 하고 실천해야 함을 느꼈다.

 어느 날 딸에게 줄 책을 사면서 문득 그 선배 딸이 내 딸과 동갑임이 생각났다. 그 리고“제 딸이 읽었으면 하는 책인데 한 권 더 샀어요.”라며 선배에게 드렸다. 그 런 마음이 통했는지 그 선배는 그날 이후 나를 보살?이라고 부른다고 동료들이 전해 주었고 그 선배와의 사이가 이전보다는 점점 편안하게 되어가는 것을 나도 느꼈다.

 지금도 항상 되는 쪽으로 답을 주실 것을 믿기에 어려운 일들이 복병처럼 나타나 도 또 버텨내고 견뎌내야 하는 일들이 겨울처럼 찾아와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겨울 은 춥지 않을 것이라는 긍정의 힘을 잃지 않으려고 기도한다. 선배가 퇴직하고 선배 따님의 결혼식까지 지켜보는 인연으로 이어지고 나는 그곳에서 경정까지 승진했다. 이제 나도 퇴직을 앞둔 할머니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잘 버 터고 견뎌내었다고 칭찬해 주신다는 알기에 기도를 게을리할 수가 없다.

 광화문 시절이 참 춥고 동토같이 차가웠지만 순종이 주는 평안과 감사를 잃지 않 는 긍정의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셔서 따뜻했다. 그리고 지금은 서귀포에서 비교 적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지만 하나님과 함께 호된 시절을 견뎌낸 광화문이 늘 그 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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