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현 장로

분당지구촌교회를 섬기시는 장로님은 전남경찰청장을 지내셨으며 현재 경기북부경찰청장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경찰 본분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15만 대한민국 경찰의 일터 선교현장을 지키는 한국경찰기독선교연합회 회장으로도 섬기는 행복한 사명자이기도 하다.

 

 평소 존경하며 기도와 일상에서 신앙의 모본을 보이시는 청장님을 찾아뵙고 평소 물어보지 못한 궁금했던 여러 이 야기들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나누었다.

Q1- 경기북부경찰청 치안책임자로 임하시는 마음은?

 모든 경찰활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의 안전입니다. 국 민들의 사건사고와 위험 신고에 최대한 빨리 대응하고 사전 에 선제적으로 국민들을 범죄와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활동을 강조하고 있습니 다.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회적 약자는 절대 보호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민들을 보호하는데 모든 경찰관들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완벽하 게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급변하는 치안환경과 새로운 범죄추세에 효과 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 변화의 핵심인 정보기술을 민첩하게 도입하고 응용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학습하는 조직이 되어야 합니다. 현장에 서 필요로 하는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여 숙달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업무실적을 거양하거나 현장에서 애쓰는 동료들을 격려하는 것은 저에 게 특별히 부여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방문이 쉽지 않지만 나름 노력을 하 고 있고 SNS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현장동료들을 만날 때면 다산 정약용 의 목민심서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강조합니다. 溫其顔色 以詢以訪 則民無不悅矣(온기안색 이순이방 즉민무불열의).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여 민정(民情)을 묻 는다면 기뻐하지 않을 국민이 없다는 뜻입니다. 자치경찰제도까지 시행하는 현 상황에서 우리 동료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마음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공직자 의 기본자세로서 제 마음에 새겨두고 있는 목민심서 구절을 하나 더 소개하면 公事有暇 必凝神靜慮 思量安民之策 至誠求善(공사유가 필응신정려 사량안민지책 지성구선)입니다. 공무 중 여유가 생기면 정신을 모으고 주민들이 안전하게 생 활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선을 구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매 일 아침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국민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 을 감사하며 사량안민에 필요한 지혜와 명철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변치 않는 루틴입니다.

Q2- 정약용선생의 목민심서를 애독하신다는데 특별한 이유는?

 중국이나 우리나라 고전들을 두루 읽는데 그중 다산 정약용선생의 저서들을 가 장 많이 읽은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흠흠신서는 형사법 전공자로서 머리로 읽 었다면 목민심서는 공직자로서 가슴으로 읽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목민심 서를 읽을 때는 무덤덤하게 책장을 넘겼지만, 다산선생의 유배지이자 저의 고향 인 강진에서 경찰서장으로 근무하면서 읽었던 목민심서와 다산선생의 생가가 있 는 남양주를 관할하고 있는 경기북부의 경찰청장으로서 읽는 목민심서는 느낌이 다 달랐고 매번 새롭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현장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목민심서의 요절들을 나누게 됩니다. 다 산과의 귀한 인연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Q3- 캐나다 밴쿠버와 중국 북경에서 경찰주재관으로 근무하셨는데 그곳 경찰의 특이한 점을 소개해 주신다면?

 재외국민 보호를 위해 주재국 경찰들과 수시로 만나는 것이 경찰주재관의 임 무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재국 경찰제도도 많이 접하였습니다. 한때 경찰대학에 서 경찰학을 연구, 강의한 적이 있어서 새로운 외국경찰제도들은 모두 탐구의 대 상이 되었습니다.

 캐나다 경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신임경찰관 교육이었습니다. 한 명 의 경찰관이 현장에서 독립적으로 전문적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현장 상황 을 시나리오로 구성하여 모든 경찰후보생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있었습 니다. 한 기수당 32명의 후보생이 현장과 흡사한 교육시설에서 100 가지가 넘는 시나리오를 통해 임무수행방법을 배우는 교육과정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유 능한 신임경찰관을 배출하기 위하여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현장을 직 접 목격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한국 경찰교육의 개선을 염원 하며 캐나다 근무기간 중‘캐나다 연방경찰의 경찰후보생 훈련과정 및 시사점’ 을 학술논문으로 작성하여 국내 학술지에 발표한 바 있습니다.

 중국에는 국내 안보와 사회 보장기능을 수행하는 공안(公安) 조직이 있는데 한 국 경찰보다 직무범위가 더 넓습니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다보니 공안의 핵심 가치도 우리와는 다릅니다. 對黨忠誠 服務人民 執法公正 紀律嚴命(대당충성 복 무인민 집법공정 기율엄명) 네 가지인데 중요도도 나열순서대로입니다. 한국 경 찰에게 정치적 중립은 헌법적 명제인 것과 달리 중국 공안은 공산당에 대한 충 성을 가장 중요시하는 정치조직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 행정기관의 탈정치화 시도는 공산당과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 다. 국민에 대한 서비스나 법치주의보다 당에 대한 충성이 더 우선하는 가치이기 때문에 현장에서의 법 집행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Q4- 신앙가문으로 알고 있는데 청장님의 가족관계와 신앙배경은?

 아내와 30대 미혼 아들 둘의 4인 가족입니다. 아내의 가정예배 기록이 계속 쌓 이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가정의 주인이자 인도자임을 진심으 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1 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근무지를 따라 교 회를 옮기다가 1999년부터 현재까지 분당 지구촌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아내 는 우리 가정의 중보기도자로서 세 남자를 위한 기도를 한시도 그치지 않고 있습 니다. 특히 제가 37년째 공직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끊임없는 기도로 저를 응원한 아내의 공이 가장 큽니다. 두 아들은 태중에서부터 지금까지 신앙의 굳건한 반석 위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직장을 선택할 때도 서두르지 않고 자신들의 신앙관에 부합하는 곳을 선택하였고 현재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아들 둘 다 결혼 적령기가 되어서 아들들의 배우자 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을 믿습니다.

 신앙배경을 말씀드린다면 저의 외할머니께서 신실한 기독교인이셨습니다. 어 머니도 신앙생활을 하셨으나 아버지와 결혼 후 중단하셨다가 제가 결혼할 때쯤 다시 신앙을 회복하셔서 저희 가정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계십니다. 저의 처가 는 소천하신 장인, 장모님 뿐 아니라 형제·자매들과 조카들 모두 신앙인들입니 다. 그중 목회자도 세 분 있는데 결혼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분들의 기도와 멘토링은 우리 가정의 든든한 후원이 되었습니다.

Q5- 후배경찰관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청장님의 비전?

 제가 처음으로 경찰에 입문한 1982년부터 40년이 지난 현재까지 경찰에는 정 말로 큰 변화와 발전이 있었습니다. 초임 시절 집회시위 대비 등 사회질서 유지 업무에 내몰리며 민주화 과정에서 인권 탄압의 과오들로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 난을 받았었는데, 지금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보호가 미흡했던 사례들 때문에 국민들의 질타를 받곤 합니다.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일처리가 있을 때면 비난이 계속되고 있어서 발전 없이 제자리 걷기만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일 지 모르지만, 다년간의 해외근무와 외사업무 책임자로 근무했던 경험에 비춰보 면 한국의 사회안전도는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경찰의 책임 수사 및 자치경찰제 시행 등 치안시스템 역시 세계 일류경찰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감히 장담할 수 있습니다. 경찰 선후배 동료들의 국민을 위 한 배려와 경찰임무에 대한 열정이 오늘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국민체감 경찰 개혁 2년 차로 아직 제도 정착기에 있어서 업무 부담을 호소하는 동료들도 있지 만 어느 중앙행정기관보다 변화에 따른 개혁에 민첩하고 내부 민주화에 노력해 온 관성으로 경찰은 더욱 발전하고 일하기 좋은 직장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내 부 승진경쟁이 치열하여 미래를 걱정하는 분들도 있지만 나날이 변하는 치안 환 경에 적응하기 위해 일일신하고 정진한다면 넘지 못할 장애는 없을 것입니다. 때 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는 말씀을 생각합 니다. 퇴직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1982년 1월 11일 의사가 아닌 경찰관의 길 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늘도 주어진 나의 일에 기독교인으로서 최선 을 다하고자 합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만 배웅해 주어도 존 중과 대접을 받는 기분인데, 청장님께서 바 쁜 시간을 내주시고 현관 차 타는 곳까지 내려와서 배웅해 주셨다, 시간 내주시고 함 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장님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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