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환 목사

경인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시며 카운슬링센터장으로 학생들을 섬기고 있으며, 경찰선교와 경찰선교지 문서사역에도 많은 관심과 협조를 주고 있다.

어떤 신혼부부가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면서 이런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행복한 부부가 되기 위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서로 잘못한 것 한 가지씩 지적을 해주고 그 잘못을 고쳐 나갑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성숙하게 해주는 행복한 부부가 됩시다.” 참 좋은 생각 아닙니까. 하루에 한 가지씩 잘못을 깨닫고 고쳐 나간다면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래서 이 신혼부부는 매일 저녁이면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그날 잘못한 것을 한 가지씩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처음 몇 번은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시간이 부담이 되기 시작했고,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자꾸 상대방의 단점, 못된 점, 부정적인 것만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이혼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부부라 어느날 목사님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이혼은 다음에 해도 되니, 이제는 하루에 한 번씩 상대방의 장점을 찾아 칭찬을 해보라고 권면했습니다. 어색하기는 했지만 이 부부는 그 날부터 상대방의 장점을 찾아 서로 한 가지씩 칭찬을 하거나 고마웠던 일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의 장점들이 눈에 들어오고 감사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서로 함께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게 되었답니다.

부부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부분 서로 반대 성격의 사람들이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꼼꼼한 사람은 낙천적인 사람을 만나면, 또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은 활동적이고 활발한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확 끌리게 됩니다. 우리는 첫눈에 반한다고 합니다.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이성을 보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낭만적인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의 좋은 점만 보이게 되는, 일명 눈에 콩깍지가 씌워지는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 생활을 어느 정도 하게 되면 눈에 씌워진 이 콩깍지라는 비늘이 벗겨진다는 사실입니다. 이후에는 상대방의 부정적인 면이 보이기 시작을 합니다. 조용한 게 좋아서 결혼했는데 사교성이 없는 꽉 막힌 사람으로 보이고, 낙천적인 성격이 좋아서 결혼했는데 푼수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한 단계 더 진행하면 상대방의 성향을 내 성향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당신이 틀렸으니 내 성향에 맞추라고 윽박지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혼생활은 서로 힘겨루기 단계로 접어들게 됩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여성 철학자이자 사상가였던 ‘시몬느 베이유’는 사랑은, 상대방과 나와의 거리를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설명을 붙이자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존중해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은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을 부부로 만나게 했을까요? 서로를 보완해주라는 뜻에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배우자를 돕는 배필(창2:18)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배우자는 나에게 없는 반쪽을 채워주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저는 상담가로 많은 부부와 상담을 해왔습니다. 내담자의 거의 공통점은 서로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모른다는 말은, 서로에게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를 모른다는 말입니다. 차이를 모르니 차이를 인정할 수도, 존중해 줄 수도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지난 5월은 가정의 달이었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모두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늘 상대방을 파괴해야만 합니다. 내 뜻에 맞지 않으면 언제나 당신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차이를 존중하지 않는 곳에서는 언제나 갈등과 분열만 있을 뿐입니다. 사랑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부부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이,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녀들이 행복한 부모 밑에서 건강하게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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