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 권사
경기남부청 과천경찰서에 근무하고 있으며 과천경찰서 선교회장 및 경기남부경찰 청연합 중부선교회 회장으로 경찰이 복음화되면 국민이 행복해지는 선교현장을 섬 기고 있는 전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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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저는 과천경찰서 신우회장 및 경기남부경찰청연합 중부선교회 회장으로 섬기고 있는 과천경찰서 112치안종합상황 실에 근무하는 이현수 권사입니다.
현재 26년차 경찰관으로서 대한민국 경찰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앞으로 더 나아질 경찰을 기대하며 이 직장에서의 선교사역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중요한 소명이라고 확신하며 오늘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변 동료들과 우리에게 예수님으로 오시는 모든 이에게 작은 일 하나라도 충성을 다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사명자로 살기를 오늘도 소망하고 있습니다.
저는 남도지역 작은 시골에서 태어났고 예수님에 대하여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들어보지도 못하며 살았던 신앙에 극히 가난한자였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1학년 때 친구가 학교 인근에 있는 시골교회 목사님 아들이었기 때문에“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하듯 교회를 처음 접할 수 있었고, 방과 후 교회에서 노는 것이 마냥 즐거웠던 그 시간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가 2학년 때 전학을 가게 되면서 끝이 났고, 저에게는 교회라는 곳이 또다시 아무 상관없는 공간 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1학년 때 만난 친구로부터 주일에 교회를 다니자는 권고를 받고 학생부 예배를 참석하면서 처음으로 설교 말씀을 듣기 시작하고 제한적이지만 성경공부와 기도 그리고 믿는 자들의 교제를 통하여 메말라 강퍅한 저의 부패한 마음에도 작은 믿음의 씨앗이 심기어 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가난에 찌들고 하루하루 살기조차 녹록치 않은 시골 농부의 자식으로서 주일이라고 마음껏 나의 시간이 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교회에 가는 횟수는 줄어들고 집에서 해야 할 일은 많아지니 시간이 갈수록 믿음은 돌밭에 뿌려진 씨앗과 같이 메말라 비틀어지며 몇 번 다니지도 못한 교회는 어느덧 발길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마침 1학년 자취방을 구한 곳에 개척교회가 함께 있던 곳이었던 터라 자취방 주인집 두 집사님들의 권고로 교회를 다시 다니게 되는 기회가 되었고 그 후부터 본격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면서 지금까지 가져보지 못했던 나의 종교가“기독교”가 되었습니다.
경찰에 투신하고 격일제 근무로 인해 교회 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던 시간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런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신실한 믿음의 자매를 만나게 하시고 결혼을 하면서 다시 신앙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방청에 근무할 때 수요예배에 참석하면서 신우회 활동을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직장선교사명의 중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고, 믿음도 적고 능력도 없는 저에게 3년간의 지방청 선교회장의 직책을 맡겨주신 하나님이“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 는 말씀처럼 계급적으로 어려운 자리였음에도 소명을 다 할 수 있도록 늘 지켜 주심으로 더욱 충성된 후임 이영필 회장님에게 소임을 인계해 드릴 때까지 최선으로 선 교회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접했던 교회, 그리고 중학교 때 처음 복음의 씨앗이 심겨지고 대학교 때부터 신앙이 성장하여 이 직장에 입직 한 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기까지 그 긴 시간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연약한 나를 붙잡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게 인도해 주심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감동적인 은혜입니다.
그로 인하여 제가 느낀 점이 있다면, 저는 20대 이전에 복음의 씨앗을 받은 자는 시간이 지나 언제가 될지라도 반드시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교회학교의 중요성을 거듭 인식하기를 바라며 또한 저는 기도할 뿐입니다.
오늘도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주신 사명을 올곧고 감당하고 계시는 모든 형제 자매님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의 복을 넘치도록 부어주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