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우 장로
광림교회장로이며 정형외과 전문의로, 서울 역삼동 선한목자병원을 이끌어 가고 있다. 선한목자병원은 인공관절수술, 스포츠의학, 줄기세포로 대변되는재생의료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굳셰펴드 재단을 통해 무료진료센터(현재 19개)를 세워 20년간 의료선교를 해오고 있다. 저서는 의료선교의 과정을 담고 있는 “건너와서 도우라”와 의술철학과 신앙이 담겨진 “바디 바이블”, 인간의 감정을 심리 의학적으로 해석해 낸 “마인드 바이블”이 있다.
프로이트의 제자이자 분석 심리학의 학파를 이룬 구스타프 칼 융은 사람의 마음을 분석하면서 인간 안에 내재 되어 서로 충돌하는 두 개의 대립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에고(EGO)와 셀프(SELF)라는 개념입니다.
보통 에고는‘자아’라고 번역하고, 셀프는‘자기’라고 번역합니다. 융에 의하면 에고란 세상과 사회의 다른 사람들과‘분리되어 있는 자아’입니다. 이 에고는 자신 을 확장하려는 욕망에 사로 잡혀 있는데,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서 대단 히 냉철하고 이기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에고는 자기 보존을 위한 기능을 하지만, 에고를 방치하면, 자기의 무한 확장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기까지 합니다. 반면에 셀프란 세상과 사회 그리고 타인, 동시에 자신의 이성과 감성과 의지를 하나 로 통합시키려고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와 타인을 분리해서 나만 챙기려 고 하는 이기적인 본성이 아니라, 나와 이웃을 하나로 이해하고, 타인을 자기 자신 처럼 수용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 구절 속에 에고와 셀프, 즉 자아와 자기로 번역될 수 있는 표현들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인하라고 말씀하신‘자기’는 에고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실 때의 자 기는 셀프, 즉 참된‘자기’를 의미합니다. 거짓 자아를 부정하고, 참된 자기를 들 어 올리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자신 안에서 선을 행하기 원하는 법과 악을 행하기 원 하는 죄의 법이 싸우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마음의 법이‘자 기’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하는‘참된 나’입니다. 그리고 죄의 법은 예수님 께서 부정하라고 명령하신‘에고’입니다. 현대인들은 무엇을 부정하고 무엇을 들 어올려야 하는지를 분별하지 않습니다. 부정해야 할 것을 들어올리고, 들어올려야 할 것을 부정하며 살아갑니다. 성공 중심! 자기 중심! 물질 중심! 을 기준으로 부정 해야 할 에고를 들어올리고, 들어올려야 할 셀프를 부정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질기고 이기적인 에고를 부인할 수 있을까요? 예수 님의 말씀처럼 에고를 부정하고, 참된 자기를 세워 나가는 길이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의미인‘봉사’라고 생각합니다. 길을 걷다 보면 바윗돌에 한 자로 써 놓은 글이 눈에 띌 때가 있습니다.‘초아의 봉사’라는 글입니다. 자아를 부정하는 힘의 원천은‘봉사’에 있습니다. 인간은 봉사하게 될 때, 이기적인 자아 를 초월합니다.
세익스피어는 햄릿에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호두껍질속 같은 우주에서 인간은 누구나 제왕이다.”인간이란‘나’라는 껍질 안에서 자신을 제왕으로 여기며, 자기 중심성 안에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태어나서‘나’인식하는 순간부터‘나’가 세상의 중심이고, 세상은‘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나’를 이 세상의 제 왕 되게 하려고 살아갑니다. 그런 자기 중심성의 인간이 과연 에고를 초월하여 자아 를 부정할 수 있을까요?
1991년 광주에서 24살된 이상희 대위의 전투기가 다른 교관의 전투기와 공중에서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충돌은 즉시 추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추 락하는 비행기를 버리고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상희 대위는 탈출하지 않았습니다. 충돌한 다른 비행기의 교관은 비상탈출을 하 여 낙하산을 타고 자신의 생명을 건질 수 있었지만. 이 대위는 추락하는 비행기와 함 께 땅에 곤두박질치고 말았습니다. 그는 추락 직전 비행기 안에서 짧은 몇 마디 말을 남겼습니다.“추락한다. 탈출하겠다!”그런데 잠시 후 이 대위는 뭔가를 보고 놀란 듯 결단을 번복하는 말을 내뱉었습니다.“어!! 전방에 민가가 보인다. 탈출불가!”이 말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이후 산산조각난 비행기 안에서 조종간을 꼭 붙잡고 있는 이 대위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체에서 녹음된 이상희 대위의 목소리를 온 국민들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상희 대위는 사람들이 많은 마 을을 피해 혼신의 힘을 다해 조종간을 붙잡고 미나리 밭으로 추락하였습니다. 그 광 경을 지켜보았던 마을의 주민들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비행기가 추락할 지점 을 정해 놓고 그 쪽으로 갈려고 몸부림 치는 것 같았습니다!”
인간은 언제 자아를 부정하고, 자기를 초월하게 될까요? 바로 십자가를 질 때, 타 자를 사랑할 때, 누군가를 사랑해서 그 사랑에 불타올라‘봉사’하고 싶어할 때, 호 두껍질이 깨지고 자기만 아는 제왕이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걸어 나오게 되는 것입 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에고를 뛰어넘게 해 줄 우리의 이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