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안수집사
충북지방청 청주청원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청원경찰서 기독선교회 고문으로, 청주백양교회에서는 선교국장으로도 선교현장을 섬기고 있다.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하나님앞에 은퇴는 없다는 마음으로 남은삶은 선교하고 이웃을 섬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소망하는 행복한 전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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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청주청원경찰서 기독교신우회 경감 김용준입니다. 퇴직을 얼마 남기지 않은 저에게 문서선교회에서 이렇게 마지막 기회를 준 것도 주님의 은총이고 그 자체가 영광이며 간증인 것 같습니다.
저의 고향은 청주시에서 북쪽 옛 명으로 절골입니다. 춘화절골 등 골짜기가 8개이며 골짜기마다 절이 있었다 합니다. 산등성에는 길목마다 서낭당이 있고 산골 참샘에는 용왕을 모시며 지금도 작은 암자가 두 곳 있습니다. 많은 잡신을 섬기는 동네에서 저와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맛보는 크리스찬이 되었다는 것은 제 가족에게는 기적이며 주님이 주신 최고의 축복입니다.
저의 유년기는 저의 부친이 시골에서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었고 초하루 보름으로 한 달에 두 번씩 떡시루(백설기) 에 정안수를 올려놓고 어머니가 절을 한 후 떡을 떼어다가 방앗간과 장독대에 올려놓은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기제사는 일 년에 6번 (명절포함 8번)이나 지내는 잡신의 종합세트를 체험하고 살았고 교인들이 전도하러 동네 어귀에 걸어 들어오면 할머니께서 예수쟁이들 온다며 사립문을 닫으라고 하여 닫은 기억이 있습니다. 후에 부친이 방앗간을 정리하고 운수사업(덤프트럭)을 하셨는데 그때에도 떡시루는 없어지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잡신을 섬겼습니다. 그런데도 차 사고는 일 년에 몇 번씩 났습니다. 가세가 기울자 부친께서는 어머니께 떡이 먹고 싶으면 그냥 해 먹고 차 고사 지내려고는 하지 말라고 하여 그 후로는 백설기는 먹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경찰에 들어와 총각 순경으로 농협 순찰을 돌고 있는데 농협 여직원이 자기 착한 친구가 있는데 선을 보라고 하여 토요일에 청주에 모 다방으로 나갔습니다. 다른 조건은 괜찮은데 종교가 맞지 않아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저는 일요일에 시간이 되는데 그 아가씨는 주일에는 성가대 때문에 시간이 안 된다고 당당하게 말하였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제사를 안 모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혼보다 종교(교회)를 앞세우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고 세상에 저런 사람이 있나 하며 두 번 만난 후 깨끗하게 끝내고 나온 어리석은 나에게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구원의 계획이 있으셨는지 멀리 돌아 결국은 주의 종의 길을 걷는 믿음의 아내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제 가족들의 믿음을 보면 저는 2남 5녀의 장남으로 여동생들이 먼저 교회에 나가서 교회에서 목회하는 남편을 만나 사모가 되었고 다른 동생들은 권사 2명 집사 2명 그리고 믿음 좋은 제수씨까지 있으며 잡신에다 떡시루 놓고 절하던 어머니는 집사가 되셨고 10년 전 폐암 수술을 두 번이나 하시고도 지금은 완치되어 틈만 나면 성경책을 읽고 계십니다. 저의 아내는 중형교회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으며 저를 열심히 교회 끌고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종교통일 된 것 같이 보이지만 아직 믿음 없는 가족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저의 가정에 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교회에 안 나가고 있는 아들에게 아내는 너도 이제 교회에 나가서 믿음의 자매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니 아들이 아니요. 저는 싫어요. 하더니 몇 달 후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서 교회에 잘 나가고 은행에 다니는 예쁜 며느리를 만나 우리 가정으로 보내 주신 것은 주님의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부모 말도 안 듣던 아들이 지금은 교회에 잘 따라 다니고 있습니다.